육십 블루스.. 그리운시절
다시 돌아 가고 싶은 때가 있냐고,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 가고 싶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한참 열심히 무척 바쁘게 살던 시절에는,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생각해서
무엇하냐고 되물었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그다지 어느 한 시점,
꼭 다시 가고 싶은 때도 없었지 싶다. 최선을 다해 사는 매 순간이 가장 좋은 때라는
생각을 하였으므로..
그러다가 이제 나이 육십이 되서, 내게도 한번쯤 되돌아 가고 싶은 시절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언뜻 열살 무렵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곱살에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으니, 열살이면 아마도 사학년 무렵이겠지.. 유독 그 때가 그리운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그저 산과 들에서 마음껏 뛰어 놀던 기억 때문일거다.
학교를 쉬는 날과, 방학 때면 나와 집안의 아이들 모두가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갔다.
아이들이 상상할수 있는 모든 짓을 하고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약수터에 물 먹으러
가고 개울에 멱감으러 가고 어른들 빨래 하는 데 따라 다니면서 따뜻한 바위 위에 누워, 바위 위에 넓게 펼쳐
말리는 하얀 이불보를 보는게 너무 좋았다. 때론 혼자서 동산 위에 올라,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파란 하늘과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을 그저 바라 보기만 해도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스케치북을 들고 올라가 산 꼭대기 바위에 걸터 앉아 해가 지도록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때 이후의 할아버지 댁은 이미 도시화 되기 시작해서 산위에 집이 지어지고, 약수터는 지저분해졌으며,
빨래터와 산 꼭대기의 바위들은 이미 내 차지가 아니었다.
그 무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별히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이때를 그리워 하는 지금의 마음은 아마도,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앞날의 모든 일들이 아직 시작되기 전이라는 이유 때문일거다.
세상의 눈에서 자유롭고,
모든 일이 가능하며,
젊음 앞에 거칠 것이 없는 새내기 청춘..
한번쯤 돌아 봄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나의 둑이.. 둑이는 이천 십이년에 죽었다. 태어나서 열두해를 꼬박 채우고 내품에 안겨 죽었다. 처음 품에 안겨 집에 오고 품에 안겨 눈을 감을 때 까지 둑이는 내 자식이었다. 강아지의 본능으로 서열을 정해 놓고, 땝때 슬쩍슬쩍 으름장을 놓아 어린 아들이 섭섭해 하긴 했지만, 아들이 커지고 자신이 늙어 가자 아들에게도 의지하게 되었다.
집에 혼자 남겨 놓고 가족들이 모두 늦게 귀가해도 둑이는 절대로 집안에서 용변을 보지 않았다. 덕분에 둑이를 데려가지 않는 외출은 너무 늦으면 안되는게 가족 모두의 불문률이었다.
둑이가 죽은 후에 나는 산책을 하지 않는다.
내가 둑이를 산책시킨게 아니라
둑이가 나를 산책시킨 것이다.
이천년 둑이가 태어나고 아직 둑이가
살아 있다면, 둑이는
다시 나를 산책 시킬 것이다.
아침 저녁 하루 두번 나는 둑이와
함께 동네를 한바퀴 돈다.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이웃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둑이와 그의 친구들도 사교생활을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